대한자강회는 1905년 5월 이준(李儁), 양한묵(梁漢默) 등이 조직한 헌정연구회(憲政硏究會)를 확대, 개편한 것이다. 장지연(張志淵), 윤효정(尹孝定), 심의성(沈宜性), 임진수(林珍洙), 김상범(金相範) 등 20여 명이 국민 교육을 고양하고 식산(殖産)을 증진해 부국강병을 이루어 장차 독립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했다. 1906년 4월에 조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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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자강회는 1905년 5월 이준(李儁), 양한묵(梁漢默) 등이 조직한 헌정연구회(憲政硏究會)를 확대, 개편한 것이다. 장지연(張志淵), 윤효정(尹孝定), 심의성(沈宜性), 임진수(林珍洙), 김상범(金相範) 등 20여 명이 국민 교육을 고양하고 식산(殖産)을 증진해 부국강병을 이루어 장차 독립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했다. 1906년 4월에 조직되어 강연회를 개최하고 기관지 『대한자강회월보』를 발행했다. 이 단체는 국채보상운동 이후에는 적극적인 현실참여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었다. 결국 1907년 8월 이완용(李完用) 내각의 지시에 따라 내부대신의 명의로 해산당하고 말았다. (해제: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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